'그레이트 뷰티' 영화 리뷰 | 별거 없는 상위 1%의 삶, '청춘'인지 '현실'인지가 더 중요하지
영화 '그레이트 뷰티(The Great Beauty,2013)'는 별거없는 상위 1%의 삶을 엿볼 수 있다.
40여 년 전 소설 한 권을 끝으로 더 이상 책을 쓰지 못하는 젭(토니 세르빌로)은 로마 1%의 삶을 누리는 유명인사이다. 그는 밤마다 화려한 파티를 열지만, 어떤 사람도 어떤 예술도 그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
그는 말한다.
“스물여섯 로마에 왔을 때
난 너무나 빠르게 휩쓸려 갔다.
소위 상류사회라는 소용돌이 속으로 말이다.
하지만
난 상류사회에 입성한 걸로는 성이 안찼다.
그 안에서도 왕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꿈을 이루었다.”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꿈을 이룬 사람이라고 하기에 영화 속에서 젭은 삶에 대한, 사람에 대한 애정이 없다. 화려한 삶 속에서 그는 삶의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였다. 그와 유일하게 평범(!)한 의미의 대화를 나누는 상대는 집안일을 봐주는 가정부 한 명 뿐이다. 무엇보다 영화에 등장하는 그의 눈빛은 살아있는 사람 같지 않았다.
성공했다고, 그리고 상위 1%라고 하는 상류사회에서 모든(?) 것을 누리며 사는, 그가 꿈꿨던 그의 삶은 화려하긴 하지만, 그렇게 살고 싶다는 부러움의 생각을 들게 하지 않았다.
화려하지만, 무료한 삶이라는 것을 온몸과 눈빛으로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첫사랑의 부고 소식을 듣게 되는 젭. 그리고 그는 그녀가 자신을 계속 사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기억에도 선명하지 않았던, 어렴풋이 자신의 젊은 시절 만났던 그녀를 떠올린다. 바닷가에서 함께 했던 그 화사했고, 활기찼던 그 순간을.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화려하지 않지만, 화사하면서 아름다운 젊은 여인을 보게 되는 순간이다.
영화를 보면서도, 보고 나서도 영화 제목 ‘위대한 아름다움(Great Beauty)’과 연결될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무엇일까를 계속 떠올렸다. 그럴 때 마다 떠오른 건, 화사하게 아름답던 첫사랑 그 여인의 얼굴이었다.
그 장면이 떠오르는 건 아름다운 여인이 위대한 아름다움이라기 보다는, 젭도 첫사랑의 여인도 젊었던 ‘청춘’이라는 그 시절이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극중에서 누군가 젭에게 “왜 다음 작품을 쓰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말한다.
“진정한 아름다움의 실체를 찾지 못해서”
젊은 시절, 처음 로마에 와서 소위 상류사회라는 소용돌이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빨려 들어가 버리면서, 단지 상위 1%에서 왕이 되고 싶었던 그에게는 그 당시 주어진 ‘청춘’이란 위대한 아름다움의 시간은 인식되지 않은 채 흘러갔던 것이다. 그래서 그 청춘의 아름다움을 인식할 수 없었다.
주변에 아름다운 여인이 자신에게 사랑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어떤 많은 일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것도 인식하지 못한 채, 휩쓸려서 시간을 흘려 보내 예순이 훌쩍 넘긴 나이의 삶이 되 버린 것이다.
극 중에서 젭이 말한다.
“나이가 들어
예순여섯에 깨닫게 된 좋은 점은
원하지 않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되었다”
휩쓸리지 않고 이제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만을 하면서 살고 있음에도 그는 살아있는, 활기찬 눈빛을 갖지 못한 채 살아간다.
비록 꿈을 이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꿈꾸지 않는 시기에 들어선 주인공.
누군가는 ‘청춘’의 반대말이 ‘현실’이라고 했던가. ‘청춘’처럼 더 이상 꿈을 꾸지 않고, 더 이상 되고 싶음 것이 없게 되는 현실을 살아가기에, 반대의 의미로 정의한 것이 아닐까.
“내가 만약 신이라면
나는 청춘을 인생의 끝에 두었을 것이다”
프랑스의 소설가 겸 평론가 아나톨 프랑스(Anatole France)한 말에 다시금 동조한다. 현실에 안주하고 사는 나이 듦의 삶에서 벗어나 위대한 아름다움을 꿈꾸는 ‘청춘’으로 돌아가고 싶으니 말이다.
지금, 풍요롭고 화려한데 삶이 무료하다면 ‘청춘’이 아닌 꿈이 없는 ‘현실’의 삶을 살기 때문은 아닐까? 나이가 적든 많든 꿈이 없이 사는 삶이기 때문이다. 혹, 상위 1%의 삶을 살아도 말이다.
마지막 부분에 수녀님이 나온다. 말도 잘 못하시고, 거동도 불편하시지만, 그 분은 무릎으로 계단을 오르는 고생을 하신다. 그분은 몸은 나이가 들었어도 아직도 ‘청춘’의 삶을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삶은 지금 ‘청춘’인가 아니면, ‘현실’인가? 스스로에게 다시금 물어봐야겠다.
'청춘'으로 위대하게 아름다운 삶을 살기 위하여...
"브라보 마이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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